과학잡지 [에피] 15호 (2021년 3월)
연구팀은 파일럿과 로봇의 호흡이 잘 맞도록 곁에서 양쪽 모두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했다. 동일한 하드웨어와 보행 알고리즘에서 출발한 로봇은 일 년이 넘는 훈련 기간을 거치며 각 파일럿과 호흡을 가장 잘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꾸준히 개량되었다. 연구원들은 김병욱, 이주현의 신체 특징, 성향, 보행 경험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로봇의 호흡을 조절했다. 몸의 중심을 앞으로 두고 걷는 이주현의 걸음 습관에 맞춰 로봇을 보완하고, 상체 근육을 이용하여 걷는 김병욱의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 보행 설계를 수정했다. 그렇게 최정수 교수가 자부한 대로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로봇이 완성되었다.
로봇 개발, 파일럿 훈련, 사이배슬론 경기 현장을 지켜본 우리는 김병욱, 이주현 파일럿의 걸음걸이를 무엇에 쉽게 비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이언맨 같지도, 비장애인 같지도, 로봇 같지도 않은 걸음을 걸었다. 그 걸음은 각자의 특성이 흠씬 묻어나는 김병욱, 이주현의 것이었다. 두 파일럿은 일상생활을 재구성한 사이배슬론 경기장에서 그렇게 새 걸음을 걸었다.
한겨레21 제1339호 (2020년 11월)
2020년 11월13일 오후 대전 카이스트 본원 스포츠컴플렉스. “삐, 삐, 삐, 삐-.” 경기 시작을 알리는 기계음과 함께 김병욱 파일럿의 오른발이 출발선을 통과했다. 매끈한 흰색 로봇이 그의 하반신을 감싸고 있었다. 파일럿은 자신이 착용한 로봇을 조종해 여섯 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미션은 ‘앉았다 일어서서 책상의 컵 정리하기’였다. “앉기. 앉기 선택. 시작.” 파일럿이 크러치(목발처럼 몸을 지탱하는 도구)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로봇이 행동을 안내했다. 파일럿과 로봇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때를 대비해, 공학자와 물리치료사가 앞과 옆에서 함께 걸었다.
로봇과 인간 (한국로봇학회 학회지) 17권 4호 (2020년 10월)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며 김문상 단장에게 후배 로봇공학자들과 산업계에 계신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을 물었다. 김문상 단장은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번째는 “자부심을 가져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로봇 산업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김문상 단장은 “우리만 우리를 저 평가하지 외국에서 우리나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로봇계의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로봇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두번째는 “로봇은 융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을 당부했다. 융합형 기술로서의 로봇 기술의 특성은 김문상 단장이 예전부터 꾸준히 강조해오던 점이다. 특히 몇 년 전 연구소에서 학교로 거처를 옮기고 융합기술원에서 새로운 분야를 일구며 다양한 배경의 연구 자들과 일하며 로봇기술의 융합적 특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로봇 분야는 여러 사람이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로봇 기술개발에는 기계, 전자, 컴퓨터, 제어와 같은 하드웨어 기술뿐만 아니라 뇌공학, 인지, 생체공학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이 종합적 인 기반이 되어야 하며, 결국 사용자가 로봇을 잘 받아들이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학자, 교육학자, 의사,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꾸준한 협업이 필요하다.
과학잡지 [에피] 12호 (2020년 6월)
엑소스켈레톤 로봇 개발의 핵심은 존재하지 않는 ‘정상 걸음'의 추상성이 아니라, 경사면에 첫 발을 어떤 각도로 올릴지 조정하는 구체성에 있다. 우리가 관찰한 공학자들은 엑소스켈레톤이 장애인 선수의 몸에 맞닿는 민감하고 위험한 기계라는 점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장애인과 로봇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계산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공학자들은 장애인 선수가 착용했던 엑소스켈레톤을 직접 입고, 자기 몸으로 느끼면서 걸어 보았다. 하드웨어 공학자들은 엑소스켈레톤을 장애인 선수들의 몸에 불편함 없이 꼭 맞추기 위해 망가진 기계를 바닥에 눕히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했다. 또 장애인 선수는 공학자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이 만든 엑소스켈레톤의 구조를 이해하고 기계의 움직임에 적응해갔다. 이러한 집합실험을 통해 그들은 서로 대화하는 방식, 함께 일하는 방식, 더 나아가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익혔다. 공학자와 장애인은 엑소스켈레톤 로봇을 개발하며 새로운 세계로 함께 걷고 있었다.
로봇과 인간 (한국로봇학회 학회지) 16권 4호 (2019년 10월)
올해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로봇에 투자하기 시작한 지 만 15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이제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지난 15년을 돌아보고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할 때라고 오상록 박사는 말한다. 후배 로봇 연구자들,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기업 관계자들에게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학계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돌아보고, 정책입안자들은 15년간 1조 원이 넘는 로봇 투자를 통해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돌아보고, 산업계 종사자들은 그동안 확보한 독자적인 생존 능력이 무엇인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반성하자는 것은 문책하자는 말이 아니다. 반성은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오상록 박사는 말한다. “알파벳도 모르는데 회화하겠다고 나설 수 없듯이, 로봇도 기본에서 시작해서 기초 체력을 연마할 시간이 필요해요.” 오상록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충분한 투자와 경험을 통해 맷집을 많이 키웠고,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도 많아졌다고 평가한다. 다만 아직 열매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기초 체력을 기르는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그동안 기른 체력으로 디테일 전략을 짜고 차근차근 성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한 반성과 분석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로봇과 인간 (한국로봇학회 학회지) 16권 3호 (2019년 7월)
김홍석 박사와의 인터뷰는 로봇산업과 R&D 수행에서의 ‘인프라’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남겼다. 로봇산업에서 인프라는 무엇인가. 누가,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가. 앞으로의 인 프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가, 다른 모습이어야 하는가. 2000 년대 초 김홍석 박사의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겨레 [토요판] 르포 (2019년 5월)
지금은 사회인프라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어, 이들 스스로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는 사이보그가 되어야만 하는 사회다. 휠체어 사용자들이 사이배슬론의 첨단 기술을 통해 사이보그가 된다면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이보그가 되지 않거나 되지 못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수많은 장벽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사이보그를 자처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이보그 기술을 만드는 일만큼 중요한 문제다.
과학뒤켠 5호 (2018년 9월)
로봇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너도 인간이니?>의 줄거리 역시 그러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 꾸준한 상호작용이 필요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로봇이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지, 얼마나 인간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지만으로 로봇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이유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은 훨씬 더 복잡하다.
한겨레 미래&과학 (2017년 12월 21일)
재난 로봇이 소방관의 위험한 작업 일부를 대체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소방관들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어떤 기술이 더 필요한가? 정부는 어디에 어느 만큼의 투자를 더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재난 로봇-소방대원 사이의 섬세한 상호작용 문제, 로봇이 기존 재난 대응 시스템 내에 매끄럽게 투입되고 사용될 수 있게 하는 운용, 조종, 관리, 유지보수의 문제, 그리고 그것이 지속가능하도록 지탱해줄 적절한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다.
과학뒤켠 2호 (2017년 3월)
“사장님! 오늘 3시 현재 전체업무현황을 보고드립니다. 아직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십니까? 정확하지도 않은 영업현황을 분석하며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1985년 10월 17일 자 매일경제 신문 1면에 실린 럭키금성의 POS 시스템광고 문구다. 광고 오른쪽 상단에는 럭키금성의 당시 슬로건(1984~1989) ‘人間 × 技術 × 未來’(인간 × 기술 × 미래)가 적혀있다. POS 시스템 기술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